
이춘식은 끝까지 제3자 변제를 받지 않았다 [세상읽기]
임재성 | 변호사·일제 시기 강제동원 사건 피해자 대리인
이 글은 ‘이춘식’이라고 하는 개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글이다. 또한 ‘국익’이라는 이름 속에서 인권과 역사가 천박한 방식으로 훼손된 사건에 대한 글이다. 윤석열 정부에 강제동원 피해자는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그들의 지상과제를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이 글은 걸림돌이란 낙인 속에 치워진 피해자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기 위한 노력이다.
이춘식은 일제 시기 강제노동을 당한 피해자다. 그는 2005년 일본 가해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승소 판결을 최초로 이끌어냈다. 판결 직후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이 판결을 ‘해결’(무효화)하라 압박했고, 2019년엔 경제 보복을 가하기도 했다. 국가 간 대치 국면은 길어졌고, 윤석열 정부는 ‘제3자 변제’라는 백기 투항을 선택했다. 일본 쪽의 어떤 사과도, 단돈 1엔의 부담도 없이, 오직 한국이 알아서 피해자들의 판결(채권)을 없애주는 정책이 제3자 변제다. 이 정책이 발표된 다음 주 윤석열은 도쿄에서 일본 전 총리 기시다 후미오를 만나 맥주잔을 비웠다.
피해자 중 상당수는 제3자 변제에 동의했다. 한국 정부로부터 돈을 받고 판결을 포기했다. 당연했다. 한국 정부가 ‘함께 싸워주지 않겠다’ 공식 선언을 했는데 어떻게 버틸 수 있겠나. 하지만 이춘식은 반대했다. ‘그런 돈 받지 않겠다’, ‘일본이 나한테 사과해야지’ 하셨다.
그런 이춘식이 한국 정부에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일본이 한국과 협의한 내용은, 한국 정부가 ‘모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판결을 없애주는 대가로 관계 회복을 해준다는 것이었을 터이다. 일본이 가장 피하고 싶어 했던 것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이 현금화(매각)되어 피해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었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판결도 남기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제3자 변제를 반대하는 ‘소수’의 피해자들조차 용납할 수 없었고, 그들의 채권을 없애기 위해 피해자들 몰래 기습적인 공탁까지 시도했다. 공탁 시도가 다행히 법원에 의해 막혔지만, 정부는 이 ‘공격’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출처 : 한겨레 신문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85539.html
이춘식은 끝까지 제3자 변제를 받지 않았다 [세상읽기]
임재성 | 변호사·일제 시기 강제동원 사건 피해자 대리인
이 글은 ‘이춘식’이라고 하는 개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글이다. 또한 ‘국익’이라는 이름 속에서 인권과 역사가 천박한 방식으로 훼손된 사건에 대한 글이다. 윤석열 정부에 강제동원 피해자는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그들의 지상과제를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이 글은 걸림돌이란 낙인 속에 치워진 피해자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기 위한 노력이다.
이춘식은 일제 시기 강제노동을 당한 피해자다. 그는 2005년 일본 가해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승소 판결을 최초로 이끌어냈다. 판결 직후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이 판결을 ‘해결’(무효화)하라 압박했고, 2019년엔 경제 보복을 가하기도 했다. 국가 간 대치 국면은 길어졌고, 윤석열 정부는 ‘제3자 변제’라는 백기 투항을 선택했다. 일본 쪽의 어떤 사과도, 단돈 1엔의 부담도 없이, 오직 한국이 알아서 피해자들의 판결(채권)을 없애주는 정책이 제3자 변제다. 이 정책이 발표된 다음 주 윤석열은 도쿄에서 일본 전 총리 기시다 후미오를 만나 맥주잔을 비웠다.
피해자 중 상당수는 제3자 변제에 동의했다. 한국 정부로부터 돈을 받고 판결을 포기했다. 당연했다. 한국 정부가 ‘함께 싸워주지 않겠다’ 공식 선언을 했는데 어떻게 버틸 수 있겠나. 하지만 이춘식은 반대했다. ‘그런 돈 받지 않겠다’, ‘일본이 나한테 사과해야지’ 하셨다.
그런 이춘식이 한국 정부에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일본이 한국과 협의한 내용은, 한국 정부가 ‘모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판결을 없애주는 대가로 관계 회복을 해준다는 것이었을 터이다. 일본이 가장 피하고 싶어 했던 것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이 현금화(매각)되어 피해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었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판결도 남기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제3자 변제를 반대하는 ‘소수’의 피해자들조차 용납할 수 없었고, 그들의 채권을 없애기 위해 피해자들 몰래 기습적인 공탁까지 시도했다. 공탁 시도가 다행히 법원에 의해 막혔지만, 정부는 이 ‘공격’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출처 : 한겨레 신문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85539.html